본문 바로가기

엄빠 이야기

8. 대화를 하는 방법

아이 학교에서 면담이 있는 날이었다. 선생님이 유심히 보기에 우리 아이의 표현 방법  표현력이 또래의 다른 친구들보다 부족한 것 같다는 말을  주었다. 표현력이나 표현 방법은 사람들 마다 기준이 달라서 객관적으로 어떻게  정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의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돌이켜 보니 선생님이 관찰한 것이 맞는 말인  같기도 했고, 혹시나 내가 아이를 잘못 키웠나, 우리 아이가 뭐가 잘못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생각해 보니  우리 아이들에게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이들도 집에서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이나 표현력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또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살아오는 동안  제대로  표현방법이나 표현력에 대해 교육받은 적이 없었던  같다. 당연히 아이들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보통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표현력은 책을 통해서 배운다고 얘기를 하는 것 같다. 또 다른 방법은 가정 내에서 부모나 어른이 하는  (TV 프로그램 포함)을 따라 함으로써  습득하는 방법이 있을  있는 것 같다. 책을 읽고 습득하는 능력은 사람마다 다를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머리보다 몸이 먼저 습득을 하는 사람이 있을  있고, 어떤 사람은 몸보다 머리로 먼저 습득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책을 읽어서  습득할 수도 있고, 같은 책을 읽어도 습득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사람마다의 차이지 아이가 똑똑하거나 모자라거나 해서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모든 사람이  책을 통해서만  습득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엄빠들은 가정 내에서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궁금해진다. 혹시나 내가 그러는 것처럼 결론을 먼저 듣고자 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아이가 과정을 설명하고,  설명하고 사소한 일까지 쭈욱 설명을  나가면 보통 나는 먼저 결론을 말해 달라고 조르는 것 같기도 하다. 결론은 어떻게 됐어? 누가 했는데?라는 질문을 한다든지, 시험의 결과가  나왔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보통은 점수부터 물어보지는 않는지, 등수부터 물어보지는 않는지 일등은 누가 했는데?라는 질문에 누구라는 대답을 첫 번째로 듣기를 바라지는 않았는지 궁금해진다. 

아이들이 중간 과정을 제대로 설명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이 표현력을 높이는, 표현을 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혹시나 나 간과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본다. 몇 등 했어?라는 질문에 아이는 이번 시험이 어려워서... 내가 답을  썼는데 등... 말이 길어지면 나 바로 결론을 듣고 싶어 했다. 그러니까 몇 등 했냐고? 하고 말이다.  아이들은 당연히 결론을 얘기하고 나면  과정이나 중간의 수많은 일들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나는 애들이 나에게 자세하게 설명하려고 표현하려고 하는 것들을 진작부터 막는 교육을 하지 않았는지 반성해본다.

 

엄빠로서 이렇게 표현하는 아이들에게 나 단어의 정확성, 문장의 정확성,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서 사회에서 사용하는 방법이나 표현 방법 등을 설명해주고 아이의 문장을 내가 알고 있는 만큼 수정해서 제대로   있도록 알려 줬어야 하는 것이 맞는 방법이었던  같다. 학교에서도 이런 교육 과목은 없고, 교육도 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배운 적이 없어서 자녀들에게도 알려 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우리 아이들한테 미안하기만 했.

 

대다수의 엄빠들은 나처럼 가정에서 또는 학교에서 말을 잘하는 방법에 대해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배우는 국어 과목은 한글에 대한 문법과 독해 위주로만 배울 뿐이었다. 기본적으로 말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을 잘하는 방법을 따로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같기도 하다. 때로는 아이들이 표현력이나 말을 잘하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 학원을 다니기도 하지만 모든 가정의 아이들이 그런 혜택(?)을 누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찌 보면 다들 집에서   있는 방법들을 찾아서 꾸준히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텐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나는 모르기에 시작조차도 못하는 실정인것 같다. 그래서 가정에서 실천하는 방법들을 찾아보았다.

 

시작은 내가 자녀들과 말을   구체적으로 표현을 하도록 유도를 해야 했. 나 역시 말을   구체적으로 표현   있도록 노력해야 했. 여러 가지 의미가 들어있는 말이나 애매모호한  등은 구체적으로 바꿔서 표현을 하도록 해야 했다. 그리고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재치 있게 다른 말로 바꿔서 하는 표현을 연습한다거나, 듣는 사람이 기분이 나쁘지 않게 하는 표현 아니면 듣는 사람이 기분이 좋아지는 표현을 하도록 해야 했다. 말을  표현하지 못하거나, 말에 여러 가지 의미가 들어있으면 결국 듣는 사람 의지대로 해석을 해서 잘못된 뜻의 전달로 오해를 사기도 할 수 있고, 이로 인해 다른 사람 마음의 상처를 주기 한다는 것을 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저녁을 준비하는데 아이 도와준다고 옆에 와서 물어본다. 

" 도와줄까요?"

", 그래. 소금  꺼내 줄래?"

"어딨어요?"

"거기 찬장 열어볼래?"

"어디요"

"거기 위에 설탕 있는 데 있잖아"

"어디요?"

"너는 집에 설탕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니!"

 

구체적이지 않은 지시대명사도 있고 정확하게 표현도 해주지 않으니 자녀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군 다나 자녀는 오랜만에 착한  한번 해보겠다고 엄빠 도와주러 부엌에 나왔다가 괜히 잔소리만 듣게 되니 서로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대화를 이렇게 해보기로 했다. 쉽게 같은 상황을 두고 말을 바꿔본다면..

 

" 도와줄까요?"

", 그래 고마워. 우리 아들. 정말로 필요할  나타나 줬구나. 엄마 손에 물이 묻어서 그러는데 가운데 찬장, 아래칸 오른쪽 구석에 있는 소금  꺼내 줄래?"

"이거요?"

"아니.   옆에 .  엄마가 아들을 위해 조미료 통에 이름표를 붙여 놔야겠구나. 고마워 아들"

 

자녀들이 도움을 주려고 나타날 때에는 본인이 진짜로 엄빠를 걱정해서 도와주고 싶을  일 것 같다. 본인이 꾸중을 들을 것을 작정하고 도와준다고 부엌으로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꾸중을 들으면 다시는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있.  좋은 말만 하는 것이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뜻을 전달하는데 상대방의 기분이 나쁘지 않게 하는  또한 말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는 말은 대부분 결론을 도출해내기 위한 직설적인 표현이 많은 것 같다. 표현은 자세하게 해야 할 것 같다. 눈을 감도 들어도 머리에 그림이 그려지도록 해야 할 것 같다. 자녀들에게 사랑한다고 해주는 말도 마찬가지이듯 하다. 사랑해  아들/   보다   구체적으로 해야 할 것 같다. 

"오늘 아침에 깨우지 않아도 일어나서 고마워 아들/ "

"우리 아들/딸이 좋아하는 반찬도 없는데   먹어 줘서 고마워"

 

다른 예로 라면을 끓여본다면, 라면 끓이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아주 보편화된 인스턴트 음식이고 맛있게 끓이는 각자의 노하우도 있을 것 같은데, 라면을 처음 보는 외국인이라고 생각하고 라면 끓이는 방법을 설명한다면 어떻게  것인가?  

냄비에  붓고, 물이 끓으면 라면 하고, 스프 넣고 입맛에 따라 계란 하고, 김치 하고, 파를 넣어서 끓여서 먹는다라고  것 같다. 장담하 건대 이렇게 설명을 하면 외국인은 고개를 꺄우뚱하고 시작부터 수많은 질문을  것 같다. 얼마만큼 큰 크기의 냄비를 골라야 하는지, 물은 얼마만큼 넣어야 하는지, 라면을 넣고 얼마 만큼 끓여야 하는지, 언제 계란하고 파하고 김치를 넣어야 하는지, 하나하나 질문을  것 같다. 

혹시나 이렇게 설명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봤다. 라면 1개를 끓인다고 한다면 라면마다 다르지만,  550ml 들어가서 넘쳐도 안되고 너무 바닥에 깔릴 만큼 커서도 안 되는 냄비가 필요한데 550ml 물을 넣었을  물이 냄비의 중간  정도 오는 크기의 냄비에 물을 550ml 넣고 끓이는 것이 아마 추가 질문이 없는 설명일 것 같다.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라면을 끓이기 위해 준비한 냄비가 본인 생각보다 너무 크거나 작으면 눈치 없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딸아이가 달걀 프라이를 한번 해보겠다고 엄빠한테 물어본다. 본인이 먹을 요리를 한다는 것에 엄빠는 다정하게 한 발치 뒤에서 쳐다본다. 그리고 알려 준다. 프라이팬을 꺼내어 달궈진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달걀을 익히면 된다고 말했다. “쉽네.” 달궈진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달걀을 익혔다.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기름을 너무 많이 넣었네. 이거 어떻게! 엄마는 달걀 프라이를 처음 해보는 딸아이가 무엇을 할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달걀도 몇 개의 프라이를 할 것인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확한 설명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달걀  개를 프라이를 하려면 가장 작은 프라이 팬을 꺼내야 할 것이고 달걀 하나를 사용할 만큼의 기름만 넣어서   있도록 표현을 해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이런 상황은 실제 흔히 집에서   있는 일 같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자녀들에게 제대로  교육을 시키지 못하고 있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요리를 하는 프로그램이나 핸드폰 앱에 나오는 요리 레시피 중에 가끔은 아주 황당한 것들이 있는 것 같. 도대체 재료를 얼마만큼을 준비해야 하는지 조미료를 얼마만큼을 넣어야 하는지 나와있지 않고 그냥 적당량을 넣어서 하라고 나온 것 말이다.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런 황당한 레시피를 보고 있노라면 한숨부터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얘기했던, 학교에서 아이의 표현력에 대해서 진지하게 상담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의 표현력에 대해 인지 했을 때는 수업 중에 탁자 위에 있는 꽃을 설명해보라고 하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탁자 위에 파란색 꽃병에  장미, 빨간 장미, 분홍 장미꽃  들어 있어요..라는 것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사람들마다 표현하는 방법도 다르겠지만, 눈을 감고 들어도  전체가 그림이 그려질 정도의 설명을 하는 애들도 많다는 것이 선생님의 설명이었다. 유리 재질의 파란빛이 도는 콜라 병처럼 생긴 모양의 꽃병에  장미 한 송이,, 빨간 장미  송이, 분홍 장미 한 송이,   송이의 꽃이 들어 있는데  장미는 꽃이 피질 않아서 횃불 모양의 봉우리만 올라앉아 있고, 빨간 장미는 활짝 피어서 모든 잎들이 넓게 펴져 하늘을 보고 누워있고, 가운데 몇 개의 잎은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린 것처럼  있고,  정도 피어있는 분홍색 장미는 바깥쪽의  겹의 잎만 하늘을 향해 누워있고, 가운데 2/3 정도의 봉우리는 하늘을 보고 있다고 표현을 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돌아보면 애들에게 이렇게 표현을  기회를 줬거나 표현을 하도록 알려 주었으면 우리 아이 본인의 의견을 말할  하나하나 모든 것을 표현해 줬을 텐데 그렇게 못하는 엄빠로서 부끄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나는 애들 이랑 대화를   자녀들이 생각하고 표현할  있도록 얼마나 기다려 줬는가? 얼마만큼의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 줬던가?  결과만 듣기 위해 서두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 거리기도 했다. 이런 것들을 보면 상대방과 얘기할  상대방이 생각할 시간을 주고 구체적인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같다.  어떻게 보면 말을   내가 많이 안다고 표현하고 싶어서 상대방의 말을 끊기도 하고 상대방의 말을  듣기도 전에  얘기를 하거나 맘이 조급 하여 서둘러서 결론으로 가려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봤다. 

 

엄빠로서 힘든  시간에 엄빠들도 자녀들에게 필요하면 기다려 달라고 말을 해야 할 것 같. 지금 엄빠의 상황을 설명하고 아빠(엄마)도 너희처럼 쉽지는 않단다. 하지만 아빠(엄마)를 사랑하는 나의 아들(딸)이 3개월(6개월 또는 1년)만 아빠(엄마)를 위해  청소, 빨래  집안일을 도와서 같이 해주고, 아빠(엄마)의 마음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려 준다면 아빠(엄마)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우리 예전처럼 웃으면서 살 수 있도록 만들어볼게. 그때까지 힘들겠지만 기다려줄  있겠니? “ 하고 말이다. 장담하건대 우리 자녀들은 기다려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아빠(엄마)가 힘들고 아픈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어리다고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눈치도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우리에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거나 우리가 스스로 아이들에게 말을  시간을 주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엄빠가 바라는 것은 지금의 우리 가족이 다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일 것이다. 다시 행복하게 살려면 엄빠들만의 노력으로도 가능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행복해 지기까지 시간도 많이 걸릴 것이고, 힘들고 지쳐 서로 간의 갈등으로 상황이  복잡하게  수도 있을 것 같다. 자녀들의 도움이 있으면 가족이 행복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빨라질  있을 것 같고, 가족 서로 간의 이해의 폭도 넓어질 것 같다. 자녀들과 적극적인 대화와 표현으로 서로 이해할  있는 공감대를 크게 만들어  힘든 시기를 보낸다면 우리가 원하는 행복으로 한 발짝  빨리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엄빠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 과거로의 여행  (0) 2020.04.08
9. 변해가는 생활방식  (0) 2020.03.26
7. 집안일의 매뉴얼화  (0) 2020.03.24
6. 차가운 시선  (0) 2020.03.21
5. 엄빠의 현실  (0) 2020.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