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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빠 이야기

5. 엄빠의 현실

어쩔 수 없는 이별로 인해 엄빠에게 닥친 현실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방향으로 나를 이끌었다. 아빠들의 경우 대부분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있었던 터라 가정 안에서의 일들이 당장 어려운 부분으로 다가오겠지만 엄마들의 경우에는 엄빠가 되면서 경제적인 문제, 즉 먹고사는 문제가 첫 번째 걱정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것 같다. 보다 나은 경제적 상황을 위해 맞벌이를 해온 사람들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에는 가정에서 자녀들을 돌보면서 지내다가 갑자기 경제적인 부분까지도 해결해야 하는 가장 어려운 부분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사별자로서 엄빠가 된 경우, 보험이나 연금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병이나 사고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이별을 하여 엄빠가 된 경우에는 보험금이나 연금이라는 경제적 지원으로 인해 어느 정도 다음 경제 활동을 위한 준비의 시간도 벌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엄빠가 된 사람들 모두가 그런 준비를 해 놓은 것도 아닐 것이고 자살 등의 혼자만의 선택으로 이별을 한 경우에는 보험 등도 면책으로 인해 금전 지급도 되지 않을 수 있고, 엄빠로서 경제 활동을 위한 준비의 시간도 여유도 없어 오늘 하루가 걱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자녀들과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이별자는 세상에 대해 밀려오는 두려움과 소외감,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먼저 떠나보낸 사람으로서의 미안함보다 가족을 나만의 책임으로 남겨두고 떠난 사람에 대한 원망, 복수 감이 더 강하게 남아 있을 수도 있는것 같다. 혼자서 완전하지 않은 가정을 완전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완전하게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는 엄빠들은 아침, 저녁 구분 없이 정신없이 뛰어다닐 수도 있고 경제적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투잡, 쓰리잡을 뛰어야 할 수도 있는 것 같다. 잠도 많이 잘 수 없을 만큼 정신도 없고 바쁘게 살아가지만, 때때로 혼자 있을 때 밀려드는 육체적, 정신적 외로움은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혼자만 느끼는 아픔이다. 

 

이런 아픔을 달래려 엄빠들이 오히려 더 정신없이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아가면서도 드는 생각은 지금 내 가족에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이 혹시 나의 잘못 때문에 생겨난 것은 아닌가? 내가 죄가 많아서 벌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을 수도 있는것 같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대부분은 나의 잘못으로 발생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엄빠가 스스로 이 상황에 대해 죄책감으로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어 보인다. 이런 죄책감에서 벗어나야 나를 더 빨리 원래의 내 자리로 돌려보낼 수가 있는 것 같다.

 

엄빠가 투잡, 쓰리잡을 뛰면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이별자들은 이별에서 오는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잠을 깊이 잘 수 없다고 한다. 최소 시간의 잠만 자면 자연스레 눈이 떠지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부터 아이들은 어떻게 키워야 하나 하는 고민, 온갖 답도 없는 고민들은 매일매일 머릿속에 맴돌고 그러면서 스트레스가 되어 새벽마다 잠자는 엄빠를 깨운다. 그래서 오히려 투잡, 쓰리잡을 뛰더라도 잠이 부족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불면의 시간은 결국엔 서서히 사라지겠지만 짧게는 1~2년 이상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별한 사람이 아니면 갑자기 찾아오는 불면에 대해 이해해 줄 사람도 없고 내 가슴 아픈 얘기를 내 입장에서 들어줄 사람도 많지 않아서 술 한잔 먹고 혼자 울어보거나 화장실에서 소리쳐 보는 일은 한 번쯤 해 보는 미친 짓 같기도 하다.  

 

잠을 장기간에 걸쳐 제대로 자지 못함으로 인해 때로는 나도 모르게 내 삶이 우울하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고, 마음이 안정되지 못해서 결정해야 할 일에 대한 분별력도 상실되어 사소한 일에 실수도 많아지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내가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기보다는 그냥 이별로 인한 아픔으로 기분이 가라앉아서 그랬을 거라 생각하거나,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니까 잠깐 실수를 했다고 생각을 해서 쉽게 넘겨 버릴 수도 있게 되는데 어찌 보면 내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지쳐서 서서히 아파가고 있는데 나를 옆에서 관찰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나의 중심을 잡게 해 줄 나의 짝꿍이 없어서 나도 모르게 서서히 병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문제일 수 있고, 나중에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엄빠가 됨으로써 때로는 친구들과의 만남도 반갑지 않은것 같다. 나로 인해 대화의 주제가 남편으로 바뀌기도 하고, 아내로 바뀌기도 하고, 가족으로 바뀌기도 하고, 친척 중에 본인이 대충 들었던 동병의 환자 얘기를 하거나, 우울증에 관한 얘기를 할 수도 있다. 얘기를 꺼낸 모임의 친구들이 일부러 엄빠를 의식을 해서 대화를 시작하거나 이끌지는 않았겠지만 대부분은 홀 부모인 사람이 듣기에는 듣기 좋은 대화의 주제는 아니다. 이런 모임을 한번, 두 번 경험하다 보면 결국엔 친구들과의 모임이 불편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고, 연락도 끊고 멀어지게 되어 장기간 잠수를 탈 수도 있는 것 같다. 엄빠로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에 대해 주위 사람들은 그저 안됐다 하고 동정심을 가지고 쳐다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나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문을 열어 놓지 않는 것 같다. 그럼으로써 사회관계에 있어서도 더 외롭고 힘든 시간을 겪는 것도 같다.

 

경우에 따라 사람에 대한 분노감도 커질 수 있다는데 주위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슬픔으로 장례를 치르고 혼자서 자녀들과 앞으로 살아갈 일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도 전에 사망 보험금으로 인한 가족들 간의 다툼이 발생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사망 보험금을 우리 아들, 우리 딸에 대한 몸 값이라고 생각하고 당연 부모가 가지고 가야 한다고 보험금을 챙기려 온갖 욕설과 협박으로 달려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가족이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돈 받으러 오는 빚쟁이들처럼 악을 쓰고 덤벼들기라도 한다면 사람에 대한 노여움은 아주 극에 달한다고 한다. 이때 느끼는 사람에 대한 배신감은 그 어떤 배신감 보다도 커서 더 이상은 가족이 아닌 원수가 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평소에 느낄 수 없었던 사람들의 모습에 엄빠가 되어 느끼는 것은 본인 이외에 다른 누구도 믿을 수 없구나, 다른 누구도 같이 갈 수 없구나 하는 생각에 배신감과 노여움이 찰 수도 있고, 내가 반드시 이 상황을 이겨내어 더 잘 사는 모습으로 꼭 복수하겠다고 하는 마음까지 들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먼저 간 사람을 더 빨리 잊으려 한다고 들었다.

 

연령대마다 헤어짐에 대한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는것 같다. 많은 날들을 울어 보기도 하고, 술도 먹어보고, 아무 생각 없이 거리를 돌아다녀 보기도 하고, 목적 없이 자동차를 타고 달려 보기도 하고, 방에서 몇 날 며칠을 꼼짝 않고 누워 있어 보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아픈 마음을 달랜다는 것이다. 이런 방법들은 일시적으로 마음을 풀어 줄 수 있겠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 허전함과 답답함은 남이 있다고 한다. 그러다가 답답한 마음을 달랠 곳을 찾아 인터넷을 통해 엄빠 모임이나 홀부모 모임 등 카페에 가입해 보기도 하고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적어 놓은 사연을 보고, 블로그에 들어가 대리 경험도 해보고, 나랑 같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있구나,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면서 위로를 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별 당사자는 생활에서의 변화 말고도 심리적 변화로 인해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해 애로사항이 많다는 것은 우리가 짐작해 알 수 있기도 하다. 사실 이별 당사자 말고 남아 있는 자녀들 역시 심리적 문제에 노출이 된다고 한다. 엄빠가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으면 엄빠로서의 역할 자체가 너무 힘들어 남겨진 자녀들을 돌볼 수가 없을 수 있고 방치 비슷한 상태로 놓아둘 수도 있다고 한다. 부, 모와 같이 살 수 없는 트라우마에 자기표현도 서툰 자녀들은 그 마음의 아픔을 어디에서 어떻게 표출할 수 있을까? 엄빠들이 자녀들에게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하고 더 잘해주려 하지만 본인도 힘들어 마음을 추스르지도 못하고 자녀들의 아픈 마음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 같다. 그리고 평소에 대화가 많지 않았던 자녀와의 관계에서 엄빠는 자녀들과 대화로 문제를 풀어간다고 하는 생각의 접근도 당장은 좋아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녀의 걱정은 잠시 미뤄두고서라도 이런 엄빠로서 개인적으로 어렵고 힘든 시간은 결국 사람과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 같다. 힘든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들과 만나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고 사회단체나 기관에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운다거나, 맘 편한 주위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쓰러진 나를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일으켜 세울 수 있도록 손을 잡아 달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요구는 창피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사회적으로도 내가 일어나서 멋지게 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사회에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멋지게 다시 일어나 걸어가면서 또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시간들이 지나가면서 엄빠들의 마음속에 있는 허전함도 조금씩 예전의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잠을 자지 못했던 불면의 시간들도 조금씩 사라질 수도 있을것 같다.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이별로 인해 갑자기 바뀌게 된 개인적 변화를 엄빠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내가 언제부터 이런 증상이 있었는지도 모르면서 남은 자녀들을 돌보며, 엄빠로서의 자리를 유지하기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금방 지키게 되어 현실 도피를 위한 방법들만 찾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엄빠들은 어떤 일을 결정해야 할 상황에 있어 잘못된 방향을 선택했을 경우 일반적인 부부처럼 상호보완적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더욱 곤란한 상황에 이를 수 있을 것 같다. 보통 부부인 경우, 알게 모르게 둘 줄 한 명이 아니면 둘 다 잘못된 결정으로 살아가는 방향이 바뀌면 서로 싸우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방향을 수정할 수도 있고 서로 제어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엄빠는 혼자만의 결정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집안에서 본인의 행동과 언어에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기도 하는데, 때로는 본인 스스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인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 결과에 따라 본인의 결정이 잘못되었다 하고 판단하는 순간 무릎을 치면서 후회를 하기도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엄빠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만 만일 엄빠가 되었다면 우선 본인부터 정신적, 육체적으로 제대로 되었는지 심리검사를 받아보거나 본인을 가장 잘 아는 주위 사람으로부터 확인을 받을 필요가 있으며 더 현명하고 안전하고 분별력 있는 생각을 위해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본인이 건강하다고 판단이 되었으면 다른 사람들을 만나 마음속의 외로움을 풀어주고 문득 찾아오는 심리적 외로움을 달래주고 다시 완전한 가정을 만들어 행복한 미래를 펼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을것 같다. 어떻게 보면 지금 시간은 엄빠가 새로운 환경과 생활에 익숙하지 않아서 힘들다고 여길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든다. 혼자 베개를 끌어안고 자는 것부터 세상과 혼자 맞서는 일까지 포기하지 말고 버텨야 할 것 같다. 이 고난의 시간을 탈출할 기회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결국엔 나에게도 인생의 행복을 즐길 시간은 충분히 남아 있을 것이다. 지금은 단지 익숙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할 뿐일 것이다. 이런 어려운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먼저 아픔을 극복하고 일어서야 그다음 내 자녀들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나의 아픔은 뒤로 하고 자녀들의 아픔을 극복시키려 한다면 내가 먼저 지쳐서 나중에는 자녀도 엄빠도 같이 무너지게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비행기를 타면 승무원이 비상시를 대비해 비상 안내 수칙을 설명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비상시 좌석 상단에서 마스크가 내려오면 어른이 먼저 마스크를 쓰라고 한다. 그다음에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씌우라고 한다. 어른이 먼저 살아야 자녀들도 살 수 있을 것이고 어른이 바로 서야 자녀들도 바로 설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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