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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빠 이야기

3. 어쩔수 없는 이별

결혼식을 할 때 대부분의 신랑, 신부는 많은 친척, 친구 그리고 지인 분들 앞에서 서로 양보하며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하고 살 것이라고 큰 소리로 대답을 하며 약속을 한다. 시간이 지나 결혼 생활에 서로 익숙해지고 사이가 편해지며 두 사람의 관계가 피로해지고 어떤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대답했던 약속을 이제 더 이상 지키지 못하겠다고 한다. 처음 만나서 지내볼 때랑 다른 부분들이 발견이 되기도 할 것이며, 그간 알아내지 못했던 성격으로 부딪히기도 했을 것이다. 결혼식에서 어떤 질문에 대답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시간도 지났지만 이제는 더 이상 많은 분들 앞에서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겠다고 서로에게 이별을 선택하기도 한다. 다른 이별의 경우에는 부부 외적인 이유로 함께 살아가는 삶을 생각했던 것보다 오랫동안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사별이다.

 

두 경우 모두 이별자들은 어쩔 수 없는 이별에 대한 아픔을 가슴속에 기억 속에 간직하게 된다. 이혼은 어찌 보면 이혼이라는 법적인 절차의 과정에 이별이라는 마음에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적 기회가 있는 반면, 사별은 이별에 대한 준비가 거의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 준비 없이 헤어진다는 것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인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이해를 하지 못할 것이다.

 

TV 드라마의 한 장면에서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은 저승사자가 제공하는 "망각의 차"를 마시고 지금까지 가족으로서 같이 살았던 이 세상에서의 일들을 전부 잊어버리게 된다. 저승사자는 망자를 위해서 차를 마시라고 권한다. 망자는 차를 마시고 이 세상을 떠나간다. 드라마의 내용이고 우리는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지만 만일 이런 일이 없다면 사랑하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겠는가? 망자는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 그리고 자식들을 두고 이대로 떠나고 싶겠는가?

 

TV 드라마가 아닌 현실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떠난 사람이 아닌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런 망각의 차를 마실 기회가 없다. 그런 차를 소개해 주는 사람도 없다. 매 순간 떠난 사람을 잊지 못해 가슴이 타 들어갈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사람의 몫이다. 기억을 지울 수가 없으니 하나하나 그 기억의 바다에서 파도가 칠 때마다 가슴이 사무치도록 아픔을 느낄 것이다. 망각의 차를 마시고 떠나는 사람보다 남아 있는 사람의 고통이 더 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아있는 사람과 그 가족은 남은 생을 홀 부모 가정이 되어 살아가야 하는 또 다른 인생의 험난한 항해의 출발선에 서게 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짝을 잃은 새는 힘들고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외부로부터의 위협에서 둥지도 지켜야 하고 남아있는 자식들과 본인을 위해 먹을 것도 찾아다녀야 하는 것처럼 반쪽이 된 가족들은 생각해보지 않은, 원하지 않았던 세상 밖으로 내몰리게 된다. 자녀가 어린 경우에는 홀 부모로서 남은 긴 인생의 시간을 아이들만을 위해 감당해 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하는데 정작 어른인 본인이 힘들어 자녀들을 돌볼 여유도 없을 수도 있으며, 자녀들을 돌본다고 하더라도 자녀들 먹이고, 옷 입히는 것이 전부일뿐, 정신적인 아픔을 표현하는데 서투른 아이들이 괜찮을 것이라고 여기며 자녀들의 마음을 돌봐야 하는 자체를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혼의 경우와 달리 사별자 가족은 또 다른 과정이 있을 수 있다. 어떤 경우는 가족이 암이나 다른 질병으로 인해 병마와 오랜 기간 싸우는 환자 옆에서 간호를 했을 수도 있다. 환자는 환자대로 병마와 싸우느라 힘이 들고 가족은 가족대로 장기간 환자를 돌보느라 힘이 든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환자가 나을 수만 있다면 이런 힘든 것은 견딜 수 있다고 하지만 길어지는 시간에 자녀들도 지쳐가고 옆에서 간호하던 짝꿍 역시 지쳐 갈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도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가고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가족.

환자 스스로 희망을 가지고 병과 싸우기보다는 옆에 있는 가족에게 미안해 이만 생을 포기해야겠다고 여길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별보다는 같이 사는 게 좋을 것 같지만 환자의 의지와는 다르게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 하나둘씩 늘어가면서 느끼는 좌절로 인해 서서히 이별을 준비했던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다른 경우는 이별 전에 오랜 기간 동안 술, 가정 폭력, 도박 등으로 가족으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하지 못해 가정을 경제적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거나 가족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여 이별자에 대해 생각하기도 싫고, 젊은 시절 같이 살아온 기억도 많이 남아 있지 않고 이미 몸도 마음도 늙어버린 것이 너무 억울해서 이름조차 꺼내기 싫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남들한테는 얘기하지 못하는 가족사만큼이나 지금까지 힘들게 버티고 살아온 것도 다행이라고 여길 만큼 지긋지긋했던 사람과의 이별이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또 다른 경우는 아침에 회사 잘 다녀오라고 인사도 하고 웃으며 보내줬는데, 오늘은 월급날이니 한 달 동안 수고했다고 저녁엔 삼겹살에 소주 한상 준비해 놓겠다고 말했는데 갑자기 일어난 사고로, 화재로, 남겨진 가족에게 아무런 이별 준비의 기회도 주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과 자녀들을 남기고 아무 말 없이 떠나가버린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어떤 경우는 가족만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림으로 인해 가족으로서 지금까지 옆에서 우리 모르게 힘들어 했을 사람에 대한 미안함과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그리고 준비도 없이 헤어져 이 험한 세상에 홀 부모로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으로서의 배신감과 분노 등으로 하루를 견디어 내는 것도 너무 힘들어 마지못해 사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별을 위해 마음을 준비한 사람도, 마음의 준비 없이 이별을 맞이 하는 사람도 지금 이 사회에서 느끼는 혼자 남은 사람으로서의 소외감과, 현실적으로 다가온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이 세상을 처절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이별이라 하기엔 인생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런 이별이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각 개인마다 가정마다 수많은 사연으로 어쩔 수 없이 다시 홀 부모로서 혼자서 이 세상에 서야 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면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으면 한다. 세상에 남겨진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삶에 대한 의지를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살아가겠다고 하는 의지가 있으면 두려움도 헤쳐 나갈 만큼의 용기가 날 것이다. 잠을 덜 자도 피곤을 느끼지 못할 수 있고,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을 수 있다. 때로는 살아가면서 우리 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이별을 막을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일어나 이별에 대해 슬기롭게 대처해가는 것밖에는 없는 것이다. 이별하기 전까지 최선을 다했다면 거기까지가 아마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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